또 사고? 학부모 애태우는 어린이 통학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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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23일 보조교사나 운전기사의 지도도 없이 학원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장병진 기자

23일 오후 4시 40분께 부산 연제구 거제동 A아파트 단지. 어린이집과 학원 하교시간이 되자 아파트 진입로가 통학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빗줄기를 뚫고 아파트 안에 들어와 멈춘 태권도학원 차량에서 도복을 걸친 초등학생 3명이 내렸다. 먼저 하차해서 안전을 살펴야 할 보조교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시간 사하구 하단동에 위치한 B아파트 단지에서도 음악학원 차량 한 대가 멈춰섰다. 초등학생 2명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내렸다. 이들이 하차한 자리 옆으로 어린이집과 학원 통학차량이 연이어 지나갔다. 보조교사가 원생을 차에서 안전하게 내리게 한 뒤 인사를 나누는 바로 옆 유치원 통학차량과 대조적이었다.

기사 구하기 어려워
불법 지입차량 기승
4대 중 3대가 미신고
보조교사 동행 잘 안해
"아이 안전 모두의 책임"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보조교사가 없는 통학차량은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 어린이 승·하차 지도를 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차량 출발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지만 현장에서는 이처럼 무시되기 일쑤다.



■통학차량 위법행위 폭증세

잇달아 터지는 통학차량 안전사고에 부모들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23일 만취한 상태로 통학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정 모(65) 씨를 불구속입건했다. 술냄새를 풍기며 요금을 계산한 정 씨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통학차량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고 택시기사가 경찰에 신고한 것.

음주측정 결과 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0.124%. 이 상태로 1시간 가까이 어린이를 태운 통학차량을 몰고 다니다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지난 2월 경남 창원시에서도 7살짜리 남자아이가 태권도학원 통학차량에서 내리던 중 옷이 끼어 끌려가다 머리를 다쳐 숨지는 등 전국적으로 통학차량 안전사고는 증가세에 있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13세 미만 어린이 통학차량에 대해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125건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8건에 비해 15배나 증가한 수치다. 보조교사가 통학차량에 탑승하지 않았거나 운전자가 내려 어린이들의 안전을 돌보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전속 운전기사 구하기 힘들어

날로 심해지는 통학차량의 안전불감증은 운전기사의 구인난에서 비롯된다.

대개 통학차량 운전기사는 하루 1~2시간 운행을 하는데 그친다. 임금은 월 70만~80만 원선. 사실상 한 달 생활비도 안되는 액수여서 전속 운전기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채용 과정에서 음주운전 등 다른 전과나 결격사유는 간과된다. 건강진단서를 제출하고 성범죄 전력만 없으면 채용이 가능하다.

정 씨 역시 음주운전 전력이 수차례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채용된 통학차량 운전기사는 운영자와 함께 3시간 교통 교육만 받으면 자격이 주어진다. 통학차량의 특수성을 각인시킬만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다.

정부는 보조교사까지 해당 교육에 동참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과 학원마다 불법 지입차량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신고 지입차량과 계약을 맺으면 월 130만~140만 원선에서 차량 구입비와 보험료, 기름값이 모두 해결되기 때문.

한 어린이집 원장은 "젊은 사람이 누가 오전에만 잠깐 근무하고 100만 원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려 하겠느냐"며 "결국 고령자만 몰리는데 이들에게 학부모와 소통하는 서비스 마인드를 기대하기 힘들어 젊은 운전기사들이 많은 지입차량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달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어린이 통학차량 13만5천991대 가운데 미신고 차량이 무려 9만9천855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내에 돌아다니는 통학차량 4대 중 3대가 미신고 차량인 셈이다.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김우섭 교수는 "어린이집이든 학원이든 부모로부터 아이의 안전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자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운영자와 운전자에게 국한되는 통학차량과 어린이 보행자에 관한 교육을 일반 운전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권상국·김한수·장병진 기자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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